앞선 포스트에서 70년대 80년대의 리버풀은 유럽 최고의팀중 하나로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주던 팀이였다고 기술했습니다. 하지만 80년대 중후반 두가지 큰 사건으로 힘을 잃었고 (리버풀 뿐만아니라 영국리그가...) 90년대 후반 퍼거슨감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전성기를 가지기 전까지 영국축구의 암흑기가 왔습니다.
이번 포스트는 그 암흑기의 시발점이된 두가지 비극, 헤이젤 참사와 힐스보로 참사에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헤이젤 참사
리버풀의 가장 위대한 감독 2명을 뽑으라 하면 빌 샹클리 감독과 밥 페이즐리 감독들 뽑습니다. 두 감독은 FC리버풀이라는 팀을 근대화/명문화 시키고 여러 우승트로피와 함께 전성기를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83/84 시즌을 시작하면서 페이즐리 감독은 조 페이건 감독에게 자리를 넘기고 그해 트로피 3개를 가져오면서 리버풀의 영광은 계속 될것같이 보였습니다.
84/84시즌에도 호조를 이어가던 리버풀은 85년도 5월 29일 유러피안컵 결승 (챔피언스리그 전신) 에서 유벤투스를 만났고 리버풀 역사상 최악의 사건중 하나인 헤이젤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사진> 헤이젤 참사 1 출처 : 텔레그래프
84/85시즌 결승은 벨기에 헤이젤에서 이루어졌는데 당시 리버풀팬들은 훌리건을 대표하는 집단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잉글랜드 풋볼리그 디비전1과 이탈리아 세리에A는 분데스리가를 밀어내고 최고의 서로 최고의 리그라는 자존심 싸움이 한창이던 때였기 때문에 열기가 엄청났습니다. (국가대항전급으로..) 당시에는 경기장에는 팬들을 나누는 구분벽도 없었고 (그물형식으로 약식으로만 되어있었습니다.) 경찰들도 현대 경기장처럼 많이 배치되어있지 않았기때문에 훌리건들이 극성을 부리던 시기였습니다.
사건개요는 이렇습니다.
경기중 리버풀팬들과 유벤투스팬들은 각 팀을 위해 열성적으로 응원하고있었고 그 중에 일부 과격한 리버풀 팬들이 중립지역을 넘어 유벤투스 팬들이 있는 구역까지 그물망을 넘어가 각목과 쇠파이프등을 가지고 무차별 폭행을 하면서 시작된 사건입니다. 당시에는 경찰도 배치가 되어있지 않았었고 경기장이 낡아서 그물망밖에 구역을 나누는 방어벽이 없었기때문에 한번 싸움이 시작되자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여기까지가 끝이였다면 일반적인 훌리건 난동으로 취급되어 큰 반항을 일으키지 않았겠지만 (물론 큰 문제임으로 징계를 비롯한 사후징계는 있었겠죠..) 역사에 남을 큰 사건이 된 이유는 다음에 있습니다.
<사진> 헤이젤 참사 2
당시 싸움을 일으킨 리버풀팬들로부터 도망가던 일반팬들과 유벤투스팬들은 몇개 안되는 출입구를 통해 빠져나가려다가 많은 인파의 무게를 버티지 못한 벽이 무너지면서 사상자와 다수의 부상자를 만들었기 때문인데요, 이 사건의 주범이 된 리버풀 팬들은 39명의 사상자와 450명가량의 부상자를 만들어냈고 그 주범이던 리버풀팬들은 사태의 원흉으로 비난받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경기도 1대0으로 졌고 (편파판정이라는 말도 많지만 그럴만 했다고 봅니다..) 이번 사건의 책임으로 리버풀은 7년의 국제대회 출장금지와 (10년에서 경감..) 잉글랜드 클럽팀은 5년간 대륙대회 출정금지라는 중징계를 받게 됩니다. 당시 세리에A와 최고의 리그 자리를 놓고 겨루던 잉글랜드로서는 큰 타격이였고 당시 잉글랜드 팀들의 원망을 받게 됩니다. 물론 당시 리버풀팬들이 과격하긴 했지만, 잉글랜드 훌리건 문제는 리버풀 뿐만아닌 다른 모든팀에게도 해당사항이 있었기 때문에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훌리건에 대한 제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사진> 헤이젤 참사3
이 사건으로 당시 감독이던 페이건감독은 사임하고 케니 다글리쉬 선수겸 감독이 지휘봉을 이어받았습니다.
2. 힐스보로 참사
힐스보로 참사는 헤이젤 참사와는 다른 비극입니다. 사건의 경위도 완전히 다릅니다. 헤이젤 참사가 불법적인 행동으로 인한 사고였다면, 힐스보로 참사는 잘못된 대처로 인해 일어난 사고입니다. 헤이젤 참사가 잉글랜드 축구계에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다면 힐스보로 참사는 그 문제에 마침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은 정치적인 나중에는 정치적으로도 문제가 되는사건인데 일단 사건에대한 설명을 해보자면 한마디로 넘치는 관중을 제어못해서 생긴 인재입니다.
1989년 4월 15일 리버풀은 노팅엄 포레스트와 FA컵 준결승 경기를 위해 힐스버러 스타디움으로 이동을 하게 됬습니다. 당시 팬들은 단체로 버스를 대절해서 경기장으로 이동하였고 교통체증때문에 늦어진 팬들은 급하게 경기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당시 인원통제를하던 경찰은 임시로 출구도 입구처럼 이용할 수 있게 개방을 하였고 그때문에 인원수를 정확히 파악못한 진행요원이 1600명 정원의 입석에 3000명이상의 관중을 들여보내게 되었습니다. 당시 경기장에는 훌리건 난입을 막기위해 만들었던 그물망을 비롯해서 폐쇠된 공간의 형식이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리면 몰릴수록 관중석에서 밀리고 깔리고 하는 일이 벌어지고 급한 사람들은 그물망과 벽을타고 2층으로 올라가기까지 했습니다.
<사진> 힐스보로 참사 1
경기 시작 5분후 사람의 몸무게를 못 버틴 그물망과 벽이 무너지고 사람이 압사를 하기 시작하면서 경기는 중단되고 피해복구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94명이 현장에서 압사 766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약 300명의 입원한 부상자중 2명이 추가로 사망함으로 96명의 사상자를낸 잉글랜드 축구 뿐만아닌 세계 축구 역사상 가장 큰 사상자를 낸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 후 리버풀은 사건이 해결될때까지 모든경기를 연기하였고 아스날을 포함한 여러 축구팀들도 경기를 취소하면서 애도와 응원을 보냈습니다.(벌점등 취소못하게 협박하던 FA는 덤..) 당시에는 지역라이벌이던 에버튼도 추모 스카프를 내걸정도로 모든 축구팀들이 슬픔을 함께 나눴으며, AC 밀란과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전 묵념시간에선 리버풀 응원가인 You Will Never Walk Alone을 때창하는등 당시에 엄청난 사건이였습니다.
리버풀 엠블럼을 보면, 양쪽에 횃불이 있는 그 문양은 힐스보로 참사때 죽은 사람들을 추모하기위한 불이며 '꺼지지 않는 불꽃' (eternal flame) 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사진> 리버풀 엠블럼
이 사건이후 리버풀의 모든 키트에는 96명의 사망자를 추모하는 96이라는 숫자와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습니다.
<사진> 리버풀 키트
그 96명을 추모하는 추모비와 전시관은 리버풀 홈구장인 안필드에 아직도 있으며 항상 많은 추모객이 남겨놓고간 꽃들이 있습니다.
3. 두사건으로 인한 결과
기본적으로 두 사건은 팬드르이 통제 실패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였습니다. 당시 훌리건 문제로 머리앞았던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헤이젤 참사로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힐스보로 참사로 마음을 굳히게 됬습니다. 협회는 의무적으로 모든 구장의 입석좌석을 없애고 지정 좌석으로 바꾸는게하면서 인원통제에 힘을썻고 (당시 10만명 수용가능하던 올드 트래포드는 54,000으로 축소 되었습니다. 지금은 73,000명 정도..) 직접적으로 압사의 원인이 되었던 그물망을 없애고 경찰인력을 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잉글래드 리그 디비전1이라는 명칭을 버리고 프리미어리그로 새로운 리그를 출범하였고 힐스보로 사건을 더욱 세부적으로 분석하고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프리미어리그
4. 뒷이야기
헤이젤 참사는 부인할 수 없는 리버풀팬들의 잘못입니다. 훌리건이라는 문화에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 사건이였고 그 이후 구단과 리그는 훌리건 단속에 심혈을 기울이게 됩니다. (아직도 약하게나마 남아있는것 같지만요..)
하지만 힐스보로 참사는 리그 뿐만아니라 영국사회적으로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시 총리이던 마가렛 대처 총리는 경찰의 책임을 회피하기위해 여러 언론조작과 증거인멸을 시도하였고 그로 분노한 축구팬들 대처 총리를 욕하는 응원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12년 9월 발표된 진상보고서에서 그 사건 당시 경찰들과 응급 구조대의 잘못, 초기대응문제가 하나하나 다 보고되면서 최소 59명의 사상자를 구할 수 있었다는 보고와 증거인멸을 위한 119개의 증언 삭제내용이 공개되면서 총리이던 데이빗 케러런 총리와 FA는 의회에서 사죄를 하게 됩니다. 링크
<사진> 힐스보로 참사 추모비 출처: 리버풀 공식 홈페이지
그리고 2016년 4월 26일 (이 글을 써야겠다 마음먹게된 계기, 제가 영국여행 하고 있던 시기라서요..) 법원에서는 17개의 과실이 모두 경찰의 과실이고 당시 리버풀 팬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다시한번 당시 경찰의 무능함과 리버풀 팬들의 무고함을 증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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